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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 이유 와 냉전시대 본문
6.25 전에 분단이유는 8.15해방후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를 동서38도선으로 긋고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여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고 북쪽은 쏘련군이 진주하여 일본군을 무장해제를 한 것이 분단의 원인 입니다.
2019.10.29.
알아두세요!
- 위 답변은 답변작성자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입니다. 포인트로 감사할 때 참고해주세요.
태양신 등급의 비공개 답변
정확히는 연합군 예상보다 더 빨리 전쟁이 끝나서 그렇다고 해야 할 듯 하고... 아마 예상대로 전쟁이 끝났다면 남북이 아니고 아마 "동서분단"의 형태에 가까웠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동북아의 구도도 많이 바뀌었을 거고요.
1. 먼저 질문자가 체크해 보실게 바로 "몰락작전" 입니다. 이 작전은 1945년 10월 실행 예정이었던 작전으로 1945년 5월 경에 본격적으로 기획된 일본 침공 작전이었으며 그 계획의 일부로 한반도를 영국, 미국, 소련, 중국이 분할하여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만...
잘 알려진바대로 이 광복군의 국내진공 작전은 실제로 결행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일본이 항복을 해 버렸기 때문이죠. 이때문에 연합군 내부의 향후 계획이 개판이 된 거죠.
2. 여기서 주목하실건 원래 한반도로 들어오기로 한 4개국의 입장 변화입니다.
(1) 소련: 먼저 입장 변화가 큰게 소련이었습니다. 이유인즉 당시 스탈린은 홋카이도 상륙을 주장했지만, 미국이 거부했었으며 게다가 원래 몰락작전에서 그 자신에게 떨어질 일본의 절반도 일본이 미국에 덥썩 항복해서(덴노제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임. 스탈린이 덴노를 살려 둘 이유가 없었으므로... 이건 로마노프 왕조의 최후를 생각해 보면 알수 있을 듯) 닭쫓던 개가 된 시점이었던 겁니다. 이땜에... 8월 13일자의 소련주재 미국 외교부의 전문을 참조하면 스탈린은 "남하"를 결정합니다. 즉 한반도를 치고 내려가고 만주에 아예 알박기를 하겠다.. 이런 의도였던 거죠.
(2) 미국: 미국의 입장도 꽤 변했는데... 먼저 소련이 해군 확장을 위해서 항구를 얻기 위해 홋카이도에 계속 눈독 들이고 있었던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해군력을 키우게 냅뒀더니 뒤통수를 깐 일본 때문에 미국의 대외 전략은 "문제의 싹은 남겨두지 않는다"는 걸로 선회한 거죠. 그 입장에서 일본보다 훨씬 우월한 공업능력을 가졌던 소련이 홋카이도에 부동항을 얻으면 대규모의 함대를 구성해서 또 미국을 침공할 위험이 있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개념이었던 겁니다. 이때문에 대전 말기에 소련이 홋카이도를 먼저 먹으려 들자 트루먼은 바로 거부의사를 밝힙니다. 문제는.....
소련이 한반도로 내려온다고 하자 그것도 뒷목잡을 일이었던 거죠. 즉 미국 입장에서 당시 최악의 시나리오는 부산, 포항, 인천, 목포 등에 소련 해군의 기지가 들어서고 그 기지에서 자국과 맞먹는 함대가 돌아다니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던 겁니다. 이때문에 한반도는 당시 미국의 제해권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수비 지점이었습니다. 즉 한국전쟁에서 그 많은 희생을 치루고도 싸운 이유는 바로 이런 점에서 기인한 것이었죠. 이때문에 38도선을 긋도 한반도로 당장 건너와서 소련군에게 그 위로 물러나라고 한 겁니다.
(3) 영국: 그럼 다른 한축인 영국은? 까놓고 말해서 한반도가 어찌 되든 영국은 잽싸게 손을 털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소모는 독일과의 장기간의 전쟁으로 매우 피폐했기 때문에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만 확증되면 더 바랄게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또한 원래 투입하려고 했던 영연방군의 한 축이었던 인도군과의 애매한 관계도 있어서 영국이 더 이상 원정전쟁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서 질색을 한 거죠. 그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이 알아서 싸우는 모습이 보이자 영국이 보인 반응은 "손털기" 였습니다. 즉, 여기서 "미국이 38선을 정한것" 자체도 이런 이유 때문이 된 겁니다만, 소련이 점령한 한반도 북부는 원래 영국과 소련이 각각 점령하기로 되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과 미국이 점령할 지역을 모두 가져가는 형태가 이 38선 분단이었던 거죠.
(4) 중국: 장개석 정권은 딴게 아니고... 전쟁 끝, 그럼 빨갱이와 전쟁 시작... 이게 답이었는데.. 참고로 당시 중국공산당은 꽤 특이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즉 소련공산당이 중국을 밀어 주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서방 국가들의 지지를 받지도 않았던 거죠. 이때문에 장개석은 국공내전을 기획하게 되는데, 그런 판에 한반도 정세에 끼어서 문제를 또 만들어 내는 건 그가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결론이었습니다. 게다가 눈치 보니까 미국도 발을 빼고 있는데다가... 좀 의외의 사실이긴 하지만 사실 장개석과 소련의 관계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따라서 그냥 발을 빼는게 답이었던 거죠. 양쪽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랬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중국과 미국이 분할할 지역이 대부분이었던 38선 이남은 미국이 단독으로...
그리고 영국과 소련이 분할하려고 했었던 38선 이북 지역은 소련이 단독으로...
이런 형태로 분단의 틀이 잡힌 것이었죠.
2019.10.29.
냉전 시대
1. 소리 없는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연합국의 대표들은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 결과 1945년 10월, ‘국제연합’이 탄생했지요.
“나라끼리 다툼이 일어나면 국제연합이 화해를 시킵시다.”
“전쟁을 일으키면 국제연합의 군대가 혼을 내 줍시다.”
이때까지만 해도 연합국은 한마음인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미국과 소련의 속마음은 서로 달랐어요.
‘우리 미국은 전쟁으로 망가진 유럽을 도와서 자본주의1) 국가를 이끌어 나갈 것이오.’
‘흥! 우리는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손을 잡고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어 나갈 것이오.’
소련은 동유럽에 사회주의 정권2)이 세워지도록 도왔고, 미국은 서유럽 국가들을 도와서 사회주의 세력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애를 썼어요. 세계가 두 편으로 나뉘어 힘겨루기를 시작한 거예요. 그러던 중 독일을 놓고 미국 세력과 소련 세력이 부딪히는 일이 일어났어요.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동독은 1961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담장을 쌓았어. 이 베를린 장벽은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무너지게 되었지.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은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가 서로 나누어 다스렸어요. 동쪽은 소련이, 북서쪽은 미국·영국·프랑스가 차지하고, 수도인 베를린도 네 나라가 각각 쪼개서 다스렸지요. 그러던 중 소련이 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막아 버렸어요.
“당신들 세 나라가 독일을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하니, 이제부터 베를린으로 들어가는 모든 길을 막을 것이오.”
그러자 세 나라는 깜짝 놀랐어요. 소련이 길을 막아 버리면 세 나라가 관리하던 서베를린은 꼼짝없이 갇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거든요. 다행히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독일은 결국 동서로 나눠지고 말았어요.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력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세력의 대립은 전 세계로 넓어졌어요. 1950년에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 당시 우리나라도 미국과 소련 때문에 둘로 나뉘어 있었지요. 처음에는 북한이 서울을 차지하고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미국과 국제연합이 군대를 보내어 상황이 뒤바뀌었어요. 그러자 사회주의 국가가 된 중국이 북한에 군대를 보내주었어요.
“깽깽, 깨갱깽!”
꽹과리3)를 앞세우고 물밀듯이 내려오는 중국군 때문에 전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끝내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어요.
이 직전까지 한국은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남쪽은 미국이, 북쪽은 소련이 다스리고 있었어. 남쪽에는 자본주의 정부가, 그리고 북쪽에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지. 그러다가 북한이 남한에 쳐들어와 전쟁이 시작된 거야.
[네이버 지식백과] 냉전 시대 (천재학습백과 초등 스토리텔링 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