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자산운용이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자 시장은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부동산 대책이 다주택자와 법인을 시시각각 옥죄는 상황에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혹의 시선이 짙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일단 규제 우회 목적 매입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부동산 투자가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이 운용하는 한 사모펀드는 6·1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고 이틀 후인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삼성월드타워를 통째로 매입했다. 이 건물은 14층 높이의 46가구가 사는 한 동짜리 나홀로 아파트로 1997년에 지어졌다. 한 개인(가족)이 이 아파트 전체를 소유하고 임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이 아파트를 420억원에 사들였다.
사모펀드, 아파트 투자 문제없을까
가장 먼저 사모펀드가 아파트에 투자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 될 것은 없다. 사모펀드는 그동안 빌딩과 오피스, 물류센터 등에 투자해 임대수익을 거둬왔다. 아파트 역시 법적 제한 없이 투자할 수 있다.
업계에서도 법적 테두리 내에서 참신한 투자 전략을 세웠다는 반응이 앞선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처음 소식을 접하고 ‘이런 방식의 상품 개발도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상업용 빌딩이나 오피스에 투자해 임대수익 등을 배분하는 상품은 있었어도 이렇게 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인수하는 형태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노후 아파트를 리모델링해 수익을 얻는다는 전략 자체는 참신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왜 ‘삼성월드타워’ 골랐나
이지스자산운용은 삼성월드타워를 리모델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월드타워는 사모펀드가 리모델링을 진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리모델링을 하려면 주택단지 전체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조합을 결성해야 한다. 그런데 삼성월드타워는 소유주가 1명뿐이라 통으로 매입할 수 있었다. 의사 결정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아파트 자체의 입지도 좋다. 부동산 신탁업계 관계자는 “서울 강남권 신규 아파트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실상 새 아파트가 추가되는 셈”이라며 “임대 수요 및 추가 시세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수 가격이 얼마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추후 사모펀드 청산 시 적지 않은 차익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모델링 업계의 평가도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리모델링을 시행하면 가구당 전용면적의 40%를 확장할 수 있다. 이 경우 가구당 평형을 넓힐 것인지, 가구 수를 늘릴 것인지는 조합의 선택이다. 가구 수를 확장할 경우 강남 한복판에 일반분양 물량이 풀리는 셈이다. 한 아파트 리모델링 업계 관계자는 “강남권은 일반 분양가가 워낙 비싸 리모델링만 하면 무조건 수익성이 난다고 보면 된다”며 “다만 조합 결성 이후 사모펀드가 주체가 돼 안전진단 등을 진행하는 게 워낙 낯선 개념이라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회피책으로 악용될까
거래 사실이 알려진 뒤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정부가 6·17 대책과 7·10 대책을 연이어 내놓으며 강남과 다주택자, 법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나선 상황에서 이지스자산운용의 ‘이례적 거래’가 규제 회피를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지스자산운용은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올해 3월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며 4월 말까지 거래가 완료되는 게 목표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불가피하게 거래가 연기됐다”며 “일각에서 제기했던 ‘투자 규제 회피 목적의 사모펀드’라는 것은 일반 법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세제 적용을 받으므로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도 규제 회피 목적의 투자일 가능성은 작다고 평가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아파트 전체(46가구)를 한 사람이 소유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투자 상품이 계속 나오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다만 이지스자산운용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부의 계속되는 규제로 양도세가 강화되는 등 개인과 법인의 임대사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사모펀드뿐 아니라 다양한 대체 투자경로로 주목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재건축이 크게 제한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정비 방법을 찾은 것으로도 보인다”면서도 “정부 규제 기조가 계속되는 한 이처럼 새로운 방법들이 규제 우회 방법으로 계속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택현 양민철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