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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삶 2021. 5. 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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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칼럼] 역사 대전환기의 혼군들

출처 : 한경

 

조선 '3대 昏君' 선조·인조·고종
시대 변화 눈감고 국난 자초해
지배계급 무능·오판 총체적 책임

정치·경제·사회 大전환기에
리더들 실력이 나라 운명 좌우
'미래 없는 정치'에 맡겨야 하나

오형규 논설실장

조선 519년 역사에서 ‘3대 혼군(昏君)’을 꼽는다면 선조, 인조, 고종이 아닐까 싶다. 거대한 시대적 변혁에도 무능과 오판, 무지와 비겁함으로 국난을 자초했다. 선조는 임진왜란, 인조는 병자호란, 고종은 망국을 불렀다. 국제 정세에는 깜깜이였고, 당파에 휘둘리며 왕권 유지에 골몰한 것도 공통점이다.
혼군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으로 사전에 정의돼 있다. 율곡 이이가 명확히 설명했다. ‘정치를 잘해보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간사·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 패망하는 군주’가 혼군 또는 암군(暗君)이다. 그런 대표적 혼군이 진시황의 아들 호해다. 환관 조고에게 휘둘려 나라를 말아먹고,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를 남겼다.
동서양 역사를 돌이켜보면 성군과 명군은 극히 드물고, 폭군 아니면 혼군이나 용군(庸君·변변치 못한 군주)이 대다수였다. 로마의 네로, 카라칼라, 코모두스나 3세기 50년간 무려 26명이 난립한 군인황제들이 그렇다. 중국의 위(魏) 조예, 진(晉) 혜제, 송(宋) 휘종도 망국을 부른 혼군들이다. 말년에 망가진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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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시대 용어인 혼군을 21세기에 다시 소환한 이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왕으로 치면 혼군”이라고 비난했다. 나중에 그가 북한 김정은을 ‘계몽군주’로 칭한 걸 보면 판단력이 극히 의심스럽지만, 이듬해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교수들도 ‘올해의 한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골랐다.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는 불행히도 비슷한 경로로 되풀이된다. 왕조시대라도 왕에게 전적으로 실패 책임을 지울 순 없다. 당대 권력층의 실력이 나라 운명을 좌우한다. 명백한 왜란 위험조차 무시한 당파, 맞서 싸울 능력도 없이 결사항전만 외치다 삼전도 굴욕을 자초한 척화파, 매관매직과 사리사욕에 눈멀어 나라 망하는 줄도 모르던 민씨 일가도 혼군들 못지않게 책임이 크다.
조선의 권력집단인 사림은 ‘도덕적 확신에 찼지만 결국 더 강력한 권력 욕망의 자장(磁場)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됐다’(이정철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권력 지향성을 지금 586 집권세력에게서 다시 보게 된다. 국익과 공익보다 위에 정파이익을 놓고, 집단적 오만과 무능으로 국정 실패와 혼용무도 사회를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세습이 아닌 선거로 리더를 선출하는 현대 국가에서 실패 책임은 대통령을 포함한 집권세력 전체가 져야 한다.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정하다. “잘한 것을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은 1년도 괄목상대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경제·민생, 외교·안보, 부동산과 일자리 등 어디서도 방향착오를 바로잡을 지력(智力)과 실력을 갖추지 못해서다. 그럴 의지도 안 보인다. 미·중 패권전쟁의 중차대한 시기에 홀로 역주행하고, 낡은 이념으로 아직도 곳곳에서 경제를 실험하려 든다. “무능에는 두 종류가 있다. 몰라서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과 모르는 줄도 모르고 끝까지 밀고 가는 무능이다”라는 한 전직 장관의 논평이 뼈를 때린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의 관심은 오로지 다음 선거뿐, 아무도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포스트 코로나’의 대전환기에 기술전쟁, 4차 산업혁명과 연금 개혁, 고비용·저효율 구조개혁 등은 그들에겐 표 떨어질 소리로 치부된다. 앞으로 50년 이상 더 살아갈 2030세대에게는 참으로 끔찍하다. 앞날이 암울하니 더 조바심 나서 한탕 베팅에 몰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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