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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자산신탁 대표 인터뷰

평범한삶 2021. 7. 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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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경

하나자산신탁 CEO 탐구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한 달 내 모든 직원의 이름과 가족 신상을 외우겠습니다.”
이창희 하나자산신탁 사장이 2010년 하나은행에서 다올부동산신탁(현 하나자산신탁)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첫날 임직원들에게 한 다짐이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선 동고동락할 직원들을 제대로 알고 믿음을 주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서다. 당시 100명이 채 안 됐던 직원은 현재 약 200명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모든 직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
이 사장은 2012년부터 대표로 하나자산신탁을 이끌고 있는 부동산신탁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다. 부동산신탁은 신탁회사가 소유자로부터 위탁받은 부동산을 효과적으로 개발·관리해 이익을 돌려주는 제도다. 이 사장은 후발주자이던 하나자산신탁을 업계 2위로 키웠다. 하나자산신탁의 수주 실적은 2013년 말 233억원에서 지난해 1665억원으로 증가했다.

뱅커에서 ‘부동산 신탁맨’으로

이 사장은 회사일은 가장 중요한 취미이자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1986년 서울은행에 말단 행원으로 입사해 부동산신탁사 CEO가 된 배경에는 “조직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는 직업관이 자리하고 있다. 회사를 향한 애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일벌레’ 이 사장에게도 잊고 싶은 과거가 하나 있다. 1996년 서울은행 로스앤젤레스(LA)지점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지 1년 만에 외환위기가 터졌다. 현지에선 지점별로 자금을 직접 조달해야 했다. 미국 금융시장이 문을 닫으면 유럽과 아시아 시장을 챙겨야 했다. 사무실에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쪽잠을 자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 같은 노력에도 은행 구조조정으로 LA지점은 폐점 결정이 났다.
그는 사무실 집기를 고물상에게 헐값에 넘겼다. 마지막으로 지점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는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에 합병된 2000년대 초 부동산금융팀으로 발령 났다. 부동산 관련 일은 직원들이 꺼리는 업무였다. 하지만 이 사장은 부동산 개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봤다. 당시 국내에서 커가던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사업자)들을 유심히 살폈다.

 

이 사장은 휴가를 내 미국 뉴욕에 가 부동산 전문서적 7권을 구입했다. 직접 번역하면서 부동산 전문 분야를 파고들었다. 일하는 틈틈이 CCIM(상업용부동산투자분석가) 자격증도 따고,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도 진학했다. 조직 내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행장 비서실장 자리도 받아들이기 전까지 몇 번 망설였다. 부동산 업무를 계속하고 싶어서였다. 결국 다올부동산신탁 인수 업무 PMI(인수 후 통합 전략) 총괄 단장으로 참여한 뒤 부동산신탁업과 인연을 맺었다.

책임준공형 토지신탁 등 신상품 발굴

이 사장은 직원은 물론 업계 관계자에게 “신탁 시장을 확장하고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사장이 된 뒤 수익성이 높은 대신 리스크가 큰 ‘차입형 토지신탁’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개발신탁으로 불리는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디벨로퍼를 대신해 사업비를 조달하고 시공사를 정하는 등 개발 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신탁 상품이다. 이 사장은 수수료가 높은 차입형 토지신탁을 적극 육성해 초창기 회사의 실적 기반을 다졌다.

이 사장이 기존의 틀을 깨고 2016년 시장에 처음 도입한 상품은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이다.

부동산신탁사가 시공사 선정부터 준공 및 관리까지 맡으며 시공사의 책임준공 의무를 책임지는 상품이다.

이 사장은 신규 사업을 수주하기 전 건설사의 시공 능력과 재무 상태 등을 면밀히 검토했다. 내부 심의를 여러 차례 거친 뒤 수주하고, 이후 해당 사업팀 및 유관 부서에서 분양률, 공정률, 정책 변수 등을 매달 점검하면서 현장을 관리했다.

업계에선 책임준공형 상품 도입이 부동산신탁 시장이 양적·질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탁 시장에서 책임준공형 상품 규모(지난해 말 기준)는 4000억원 선으로 전체 수주의 26%에 달한다. 이 중 하나자산신탁의 수주 실적은 2835억원(누적 기준)으로 업계 선두다.


2019년 하반기부터 증권사 계열 부동산신탁사 세 곳이 영업을 시작하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다. 업계에서 이 사장을 주목하는 이유는 지분 투자,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가장 빠르게 추진하고 있어서다. 이 사장은 연초 강북의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서울 종로구 효제동 주차장 부지 개발 사업에 출자해 지분 19%를 확보했다. 이 부지에 800실 규모의 오피스텔을 개발할 예정이다. 그동안 개발 프로젝트에서 진행한 지분 투자는 50여 건에 이른다. 당장의 수익보다 미래 ‘춘궁기’를 대비한 포석이다.

이 사장은 하나금융그룹에서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로 통한다. 그룹 내 부동산금융협의회 의장, 부동산금융평가위원회 위원장, 부동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그의 또 다른 직함이다. 계열사 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사업성과 리스크를 사전 점검하는 컨트롤 타워인 셈이다.

 

이 사장은 ‘기본에 충실할 것’과 ‘현장에서 답을 찾을 것’을 경영 철칙으로 여긴다. 그는 “부동산신탁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금융업에 가깝다”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지만 순간의 이익을 얻기 위해 리스크를 간과하는 영업 방식은 안 된다”고 말한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리스크 관리 원칙을 지키지 않거나 내부통제 기준을 완화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덕분에 차입형 및 책임준공형으로 진행한 170건의 프로젝트 중 사고 사업장은 한 곳도 없다. 의사 결정을 하기 전 무조건 현장을 방문하는 습관도 몸에 밴 지 오래다. 지방 출장이 있을 땐 인근 사업장 위치를 파악해 반드시 현장을 들렀다 온다.


이 사장은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잡고 있다. 회사 성장의 공은 직원들에게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뛰어난 직원들 덕분에 ‘걸어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업계 성장과 발전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하나자산신탁의 사업 다각화 이창희 하나자산신탁 사장은 수수료 수익에 집중된 부동산신탁사들이 사업 구조를 다각화하고 안정적인 수익원을 발굴해야 한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부동산신탁사가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1990년 부동산 투기 대책의 하나로 부동산 신탁제도를 도입했다. 대한부동산신탁과 한국부동산신탁 2곳이 운영되다가 1997년 외환위기 때 부실이 커져 파산했다. 1996년 이후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하나자산신탁 등 11곳이 순차적으로 인가를 받았다. 2019년 금융당국이 부동산신탁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대신자산신탁, 신영부동산신탁, 한국투자부동산신탁 등 3개의 신탁사를 인가해 총 14곳이 됐다.

부동산신탁사의 화두는 신상품 발굴과 사업 영역 확대다. 이 사장은 “부동산신탁사들이 새로운 수익 모델 발굴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사업 모델이 없기 때문”이라며 “단순한 자산 신탁이 아니라 공급자·수요자·금융회사를 연결하는 플랫폼 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신탁사들은 토지 매입부터 분양에 이르는 3년 동안 수수료를 받는 게 기본적인 사업 구조다. 하지만 이런 분양 사업은 부동산 경기 영향을 받기 일쑤다. 이 사장이 주목하는 신사업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작은 임대형 사업이다. 개발뿐 아니라 임대·운용·관리까지 부동산 모든 생애주기를 사업 대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전체 신탁 기간도 토지 매입부터 임대 운영까지 약 10년에 달한다. 이 사장은 “임대형 사업이 신탁 본연의 기능인 개발은 물론 임대·운용·관리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신탁사들의 사업 구조 다각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전문 신탁업의 발전을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신탁업은 정부의 인가(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에서 부동산을 위탁·관리하는 비즈니스”라며 “규제의 울타리 속에 한정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좁은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파생상품 등을 다양하게 만들지만 부동산신탁업은 토지신탁 담보신탁 관리신탁 등 몇 개의 상품을 정형화해 운신의 폭이 좁다는 게 이 사장의 생각이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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