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존 리 구글코리아 대표가 출석했다. 한국 여론을 좌우하는 유튜브의 정치적 편향 문제에 답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입법기관인 여야(與野) 의원 10여 명 간 설전이 오간 한복판의 증언대에 선 존 리 대표는 구글코리아의 ‘진짜 대표’가 아니었다. 구글코리아의 대표이사는 일본 국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낸시 메이블 워커다. 구글코리아엔 등기 이사 4명이 있지만, 존 리 대표는 그마저도 아니다. 법적으론 유한회사 구글코리아의 직원이다. 올해 국감 때도 정치권은 구글코리아 대표를 증언대에 세울 분위기지만, 이번에도 메이블 워커 대표이사가 아닌, 한국계 미국인 존 리가 출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본지가 주요 외국 기업 20곳의 한국 법인(유한회사·유한책임회사) 등기를 열람한 결과, 구글코리아·애플코리아·나이키코리아·루이비통코리아·샤넬코리아 등의 대표 23명(공동대표 포함) 가운데 19명이 외국 국적이었다. 전체 등기 이사 50명 가운데 외국 국적은 42명이었다. 상당수는 한국 법인이 대외에 ‘대표이사’라고 알리는 경우와 실제 법인 대표가 달랐다. 법적 책임이 없는 명함만 대표인 이들이 한국 입법기관의 국정감사에 해당 법인의 대표자로 참석해 발언한다. 국내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주로 보좌관들이 국감 증인 명단을 추리고 회사에 통보하는데, 실제 대표가 누군지 모르고 혼동해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애플코리아의 브랜든 윤 대표와 페이스북코리아의 정기현 대표도 구글코리아와 같은 경우다. 윤 대표는 2018년 국감, 정 대표는 2019년 국감에 출석했고 정부 부처와의 회의에도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지만 둘 다 등기이사가 아닌 직원 신분이다. 애플코리아의 법인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거주하는 피터 알덴우드다. 페이스북코리아는 싱가포르 국적의 데미안 여관야오와 캐나다 국적의 수전 제니퍼 시몬테일러가 이사다. 프랑스 명품 업체인 에르메스도 마찬가지다. 에르메스코리아의 한승헌 대표는 한국 조직을 9년째 이끌고 있지만, 법적으론 대표이사가 아니다. 프랑스인인 악셀 뒤마와 플로리앙 크랭이 공동 대표다. 두 사람은 각각 프랑스 파리와 중국 상하이에 거주한다. 한국에 거주하지도 않는 인물을 법적 책임을 지는 대표이사로 앉힌 것이다